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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열풍이 한창이던 때, 저도 새로운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돼 높은 가격에 따라 샀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가가 충분히 내려와 펀더멘털 대비 매력적인 수준이 됐을 때는 오히려 온갖 단점이 눈에 들어와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지금 한국 증시에서 반도체가 딱 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평선 수렴이 진행되는 지금, 방향이 갈리기 전에 제가 정리한 프레임을 공유합니다.
바람둥이 이론으로 읽는 지금 시장 심리
주식시장을 설명하는 비유는 많지만, 저는 최근에 들은 '바람둥이 이론'이 가장 정확하다고 느꼈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새로운 테마가 등장하면 열광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단점부터 찾기 시작한다는 논리입니다.
2014~2015년 화장품주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의 PER(주가수익비율)이 45배까지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PER이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이익 1원을 얼마나 비싸게 사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밸류에이션 지표입니다. 지금 화장품주는 20배만 넘어도 비싸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때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법니다. 이익이 늘었는데 밸류에이션 기준은 낮아진 겁니다.
반도체도 같은 흐름입니다. 처음 오를 때는 "무조건 좋아, 너무 싸"라는 말이 나왔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실제로 더 싼데도 밸류에이션을 따지고 실적을 확인하자는 신중론이 지배적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심리적 전환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옵니다.
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패턴이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시장 참여자들의 학습 효과가 축적되면서 같은 섹터에 예전과 동일한 멀티플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구조적 경향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맥락을 모르고 "왜 싼데 안 오르지?"라고만 반복하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외국인 매도를 이해하는 데도 이 프레임이 도움이 됩니다. 마이크론은 고점 대비 약 14% 하락 수준인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30% 가까이 빠진 상태입니다. 펀더멘털로만 보면 갭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상은 글로벌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이 금리 상승 국면에서 기계적으로 신흥국(EM) 비중을 줄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EM이란 Emerging Market, 즉 신흥국 주식시장을 뜻하며, 글로벌 자산 배분 기준에서 한국은 아직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출처: MSCI 시장 분류 기준). 삼성전자를 파는 게 기업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상위 리스크 관리 지침의 결과라는 겁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 알았을 때 꽤 허탈했습니다.
- PER 45배였던 아모레퍼시픽, 지금은 20배도 비싸다는 평가 — 이익은 늘었지만 멀티플은 줄었다
- 반도체: 고점 대비 마이크론 -14%, SK하이닉스·삼성전자 -30% 수준 — 펀더멘털이 아닌 EM 비중 조정의 결과
- 금리 상승 시 외국인은 신흥국 비중을 기계적으로 축소 — 종목 분석과 무관한 구조적 매도
- 전력기기 섹터: 2~3년 달린 뒤 쉬는 건 공식에 가깝다 — 지금의 부진은 악재가 아닐 수 있다
이평선 수렴 이후 — 반도체 소부장과 섹터별 접근법
현재 코스피의 모든 이동평균선(이평선)이 수렴하고 있습니다. 이평선 수렴이란 단기·중기·장기 이동평균선이 한 점으로 모이는 현상으로, 이후 방향성이 결정되면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위든 아래든 확실한 방향 이탈이 임박했다는 신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위로 갈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봅니다. 근거는 실적입니다. 실적이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지수를 크게 내릴 명분이 약하고, 오히려 갭이 벌어진 마이크론과의 간격을 메울 흐름이 올 수 있습니다.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관심이 많다는 분들을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저도 종목을 하나씩 찾아보다가 국내 관련 종목만 50개가 넘는다는 걸 확인하고 금방 포기했습니다. 이런 경우 ETF가 현실적입니다. 단, ETF를 고를 때 내부 구성 종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전공정 위주인지, 후공정 위주인지, 소재 비중이 높은지에 따라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제 경험상 ETF를 사놓고 구성 종목을 한 번도 안 보는 분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러면 왜 오르고 내리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ESS(에너지저장시스템) 섹터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ESS란 생산된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입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 수요의 변동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최대치에 맞춰 발전소를 증설하는 대신 ESS로 피크를 흡수하는 방식이 더 경제적입니다. 이는 기존 신재생에너지 보완 용도 외에 새로운 수요처가 생긴 셈입니다. 특히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라인을 보유한 기업들은 이 수요를 직접 흡수할 위치에 있습니다(출처: IEA, Batteries and Secure Energy Transitions).
현대차와 보스턴다이내믹스 관련해서는, 연내에 엔비디아와의 합작 또는 조인트벤처 발표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은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정동 연구센터 착공이라는 간접 근거만으로 연내 발표를 확신하기엔 근거가 얇습니다. 물려 계신 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하나만 보고 비중을 늘리는 건 위험합니다. 제 경우엔 현대차 포지션은 지금 추가보다는 유지 쪽으로 정리했습니다.
전력기기 대형주들(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이 최근 무거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2~3년 달린 종목이 쉬는 건 악재가 아니라 사이클의 일부입니다. 오히려 산일전기, 일진전기처럼 시가총액이 가벼운 종목들이 이 구간에서 더 민첩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금리가 오르면 주식은 무조건 빠지는 거 아닌가요?
A. 그렇게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2000년 닷컴버블 직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6.6%까지 올라가는 동안 나스닥은 오히려 더 올랐습니다. 금리 상승의 원인이 인플레이션 공포냐, 성장 기대로 인한 자금 수요 증가냐에 따라 주식시장 반응이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처럼 AI 인프라 투자로 인한 민간 자금 수요가 금리를 끌어올리는 국면이라면, 금리와 주가의 동행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습니다.
Q. 반도체 소부장 ETF 고를 때 뭘 봐야 하나요?
A. 먼저 내부 구성 종목이 전공정 위주인지 후공정 위주인지를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같은 '반도체 소부장 ETF'라도 소재·부품 비중이 큰 상품과 장비 위주 상품은 시황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저는 ETF 이름만 보고 샀다가 구성이 예상과 달라 당황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운용사 홈페이지에서 상위 10개 편입 종목 정도는 꼭 확인합니다.
Q. 외국인이 계속 파는데 지금 반도체 주식 사도 되나요?
A. 외국인 매도가 기업 가치 판단 때문이 아니라 신흥국 비중 기계적 축소의 결과라면, 매도 그 자체를 악재로 해석하는 건 과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흐름이 언제 멈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꺼번에 사기보다는 빠질 때 조금씩 모으고, 방향이 확인됐을 때 비중을 늘리는 불타기 전략이 현실적으로 스트레스가 덜합니다.
Q. 전력기기 주식 지금 팔아야 하나요, 들고 가야 하나요?
A. 이미 보유 중이라면 굳이 지금 팔 이유는 크지 않습니다. 실적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2~3년 상승 후 소화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저도 그 쪽에 더 가깝습니다. 없는 분이라면 포트폴리오의 10% 이내로 조금씩 담아두고, 본격적인 움직임이 나올 때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결론
이평선 수렴은 조만간 방향을 내놓을 겁니다. 실적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위로 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지만, 그게 확정된 건 아닙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틀리지 않으려는 힘을 빼는 게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소부장은 빠질 때 조금씩 모으되 ETF로 접근하고, ESS·LFP 배터리 관련 기업은 새로운 수요처라는 맥락으로 이해하면서 실적을 확인하는 순서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이 골프랑 닮았다는 말에 저는 완전히 동의합니다. 힘을 주면 줄수록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지금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